“기계처럼 완벽하지 않았기에 더 진짜였던 음악”
산울림. 이 이름 석 자만 들어도 70~80년대의 음악 감성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아니 벌써',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개구장이' 같은 노래들은 세월이 흘러도 촌스럽지 않은 선율과 가사를 품고 있다.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세 형제가 만들어낸 이 전설적인 밴드는 단순한 음악 그룹이 아니라 하나의 시대를 대표하는 목소리였다.
이 글에서는 산울림의 데뷔부터 현재까지를 3단계로 나누어 정리하며 그들의 음악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확장되었는지 그리고 왜 여전히 대중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지를 깊이 있게 되짚어보겠습니다.
1. 1977년, 청춘의 돌풍. ‘산울림’이라는 새로운 파장
1977년 당시의 음악계는 말끔한 제복과 단정한 멜로디로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산울림은 마치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세 형제가 만든 이 밴드는 ‘형제가 만든 록 밴드’라는 점도 새로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연주하던 사운드였습니다.
첫 앨범 "산울림 1집"에 실린 '아니 벌써', '개구장이',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기존의 가요 문법을 단숨에 깨트리며 파격적인 록 사운드를 들려주었습니다.
거친 기타 톤, 실험적인 믹싱, 그리고 유려한 멜로디. 산울림의 음악은 때론 엉뚱했지만 동시에 순수했고 자유로웠습니다. 대학가요제 출신의 말끔한 음악이 주류였던 당시 산울림의 등장은 청춘들의 숨겨진 감정을 대변하는 폭발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아니 벌써'의 초현실적 가사와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불협화음조차 의도된 것처럼 들릴 만큼 실험적이었고 그 실험은 상업적인 성공과도 이어졌습니다. 대중과 평단 모두를 사로잡은 보기 드문 밴드였습니다.
2. 1980년대 중후반, 침묵과 전설이 된 사운드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산울림의 활동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정치적 탄압, 시대 분위기, 개인적 선택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김창완은 연기와 라디오 DJ, 예능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을 넓혔고 김창훈은 음악 교육과 후배 양성에 집중했습니다.
산울림은 공식 해체를 선언한 적은 없지만 사실상 대중 앞에서의 무대는 멈춘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산울림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설’이라는 단어가 그들 앞에 붙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들의 음악이 삽입되며 다시금 회자되었고 특히 김창완이 솔로 활동과 방송을 통해 전한 산울림의 음악 세계는 점점 재조명되었습니다.
앨범 재발매, 컴필레이션 음반, 리마스터링 작업이 이어졌고 젊은 세대에게도 산울림의 음악은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갔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심이 담긴 음악, 기교보다 감정이 앞선 연주는 오히려 ‘힙하다’는 평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3. 2008년 이후, 비극과 재조명의 나날들
2008년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막내 김창익이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습니다. 형제라는 이름으로 묶여 평생 음악을 만들어온 이들에게 이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였습니다.
김창완은 “산울림은 이제 끝났다”고 말했지만 그 말조차 애틋하게 들렸습니다. 산울림은 영원히 멈춘 것이 아니라 한 시점에서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산울림의 음악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그들의 음악을 리메이크하거나 오마주 했고 산울림의 감성은 세대를 넘어 계승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TV 예능과 광고를 통해 다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고, '개구장이'는 어린이와 함께 부를 수 있는 가요로 자리 잡았습니다.
김창완은 2020년대에도 여전히 음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속엔 늘 산울림의 흔적이 있습니다. 형제가 만들어낸 순수한 세계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대가 그들을 더 필요로 하고 있는 듯합니다.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그래서 더 진솔하고 깊은 산울림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산울림의 대표적인 히트곡
1977 | 아니 벌써 | 데뷔곡, 한국 록 역사에 한 획을 긋다 |
1977 |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 산울림 대표곡, 광고/드라마에 다수 삽입 |
1977 | 개구장이 | 청소년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음 |
1978 | 한밤중 | 실험적인 사운드로 주목받음 |
1979 | 너의 의미 | 이후 아이유 등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 |
1981 |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 정적인 서정성으로 평단 극찬 |
1984 | 꼬마야 | 아동/청소년 음악으로 재조명 |
산울림의 대표적인 수상내역
1977 | 골든디스크 신인상 | 1집 《아니 벌써》의 대중적 성공 |
1978 | 한국방송대상 특별상 | 새로운 음악 장르 개척 공로 |
2007 |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 대한민국 록 음악사에 남긴 업적 인정 |
2018 | 헌정 앨범 ‘산울림을 위하여’ 발매 | 국내 인디·주류 아티스트들의 참여 |
2022 | K-Music Heritage 선정 | 한국 대중음악 유산으로 공식 등록 |
산울림은 철저히 자기 색을 지켜낸 밴드였다. 유행에 편승하지 않았고, 타협하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낯설었고 그래서 더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그들의 음악은 시간의 강을 건너와 오늘도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 시절의 너는 잘 지내고 있니?”
산울림의 음악은 우리가 잊고 있던 감정의 서랍을 열어주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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