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두려운 건 후회다.”
이 한 문장에 신해철이라는 사람과 그의 음악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음악에 철학을 담고 대중에게는 위로를 세상엔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졌던 존재.
영원한 마왕 신해철의 삶을 되돌아보며 이번 포스팅을 준비했습니다.
1. 1988~1991 – 무한궤도에서 솔로 아티스트로
신해철의 이름을 처음 세상에 알린 건 1988년 MBC 대학가요제였습니다.
그룹 ‘무한궤도’의 리더로 출전한 그는 ‘그대에게’로 대상을 거머쥐며 단번에 음악계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의 순수한 열정과 꿈을 대변한 이 곡은 지금도 세대를 넘어 현재까지도 사랑받고있습니다.
무한궤도 해체 이후 신해철은 솔로로 전향하며 1990년 첫 솔로 앨범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는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 같은 감성적인 발라드로 대중에게 사랑받았고 여기에 1991년 2집 《Myself》에서는 당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던 미디(MIDI) 기반 음악과 프로그래밍을 도입하며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음악 세계를 선보였습니다.
신해철은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창작자였습니다.
2. 1992~2002 – N.EX.T와 록 스피릿의 폭발
1992년, 그는 밴드 ‘N.EX.T’를 결성하며 완전히 새로운 음악 세계를 열었습니다.
록, 헤비메탈, 전자음악, 클래식 요소를 넘나드는 사운드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가사는 신해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대표곡 ‘히어로’, ‘날아라 병아리’, ‘도시인’은 단순히 좋은 음악을 넘어 시대의 고통과 젊은이들의 분노를 대변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음악 외에도 라디오 DJ로도 큰 인기를 끌었었으며 특히 ‘고스트스테이션’은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으며 신해철을 ‘마왕’으로 자리매김시켰습니다.
거침없는 입담, 거대담론을 던지는 철학적 언어, 그리고 따뜻한 위로까지… 그는 마이크 앞에서 청춘의 멘토였습니다.
또한 후배 뮤지션들과의 협업, 영화 음악 참여, 연출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창작 활동을 이어갔고 신해철은 멀티 아티스트의 시대를 미리 열어간 인물이이라는 평가입니다.
3. 2003~2014 – 철학적 예술가로, 그리고 안타까운 이별
2000년대에 들어서도 신해철은 쉼 없이 달렸다. 《Reboot Myself》, 《The Songs for the One》 같은 앨범은 그의 음악적 깊이가 더욱 성숙해졌음을 보여주고 사랑, 죽음, 존재, 고독… 삶에 대한 질문을 음악 속에 담았고 그 음악은 듣는 이에게 생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도 그는 끊임없이 실험했습니다. 자작곡, 영화음악, 방송과 칼럼, 콘서트 연출까지. 대중적인 길보다는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음악을 해나갔으며 때로는 오해받고 때로는 비판받았지만 그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2014년 믿기 힘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장협착 수술 후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것. 향년 46세. 너무 이른 이별이었습니다.
팬들, 동료 음악인, 음악계 전체가 충격에 빠졌고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되었다.
신해철은 단지 뮤지션이 아니라 한 시대의 목소리였다는 사실을.
신해철은 유행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시대를 앞서가거나 시대를 바꾸려 했고 그가 남긴 음악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의 생각은 오늘날에도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를 재부팅한다”던 마지막 앨범처럼 우리 마음속에서 신해철은 계속 깨어나고 있다.